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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산조는 산조 중에서 가장 먼저 1890년대에 형성되었다. 가야금산조는 여러 산조 중 형성 시가가 빠를 뿐만 아니라 가장 널리 보급되었으며 악기 특성상 다양한 연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가락의 짜임이나 연기기법이 가장 잘 발달하였으며, 유파 또한 가장 다양하게 구분되어 전해지고 있다.
김창조(1865∼1919), 한숙구(1850∼1925)의 발생초기의 명인을 거쳐, 심상건(1898∼1965), 강태홍(1893∼1957), 한성기(1896∼1950), 김종기(1904,5∼1937,8), 최옥삼(1905∼1956), 안기옥(1905∼1974), 서공철(1911∼1982), 박상근(1905∼1957), 정남희(1905∼1984) 등으로 이어진 다음, 김죽파(19111∼1989), 함동정월(1917∼1994), 김윤덕(1918∼1987), 성금연(1923∼1986), 원옥화(1928∼1978) 등으로 유파를 형성하였다.
김창조(1865∼1919), 한숙구(1850∼1925)의 발생초기의 명인을 거쳐, 심상건(1898∼1965), 강태홍(1893∼1957), 한성기(1896∼1950), 김종기(1904,5∼1937,8), 최옥삼(1905∼1956), 안기옥(1905∼1974), 서공철(1911∼1982), 박상근(1905∼1957), 정남희(1905∼1984) 등으로 이어진 다음, 김죽파(19111∼1989), 함동정월(1917∼1994), 김윤덕(1918∼1987), 성금연(1923∼1986), 원옥화(1928∼1978) 등으로 유파를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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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 심상건
본관 청송(靑松). 충남 서산(瑞山) 출생. 부친 창래(昌來)에게 가야금을 배워 그 성음을 터득하고 가야금산조의 이색적인 유(流)를 만들었다. 즉 다른 산조와 달리 주로 저음(低音)을 사용하였으며, 서울, 경기지역에서 번성하였던 경드름 가락이 많다. 8 ·15광복 전에 레코드 취입을 위하여 일본에 6차례나 다녀왔고, 1946년에는 조택원(趙澤元)무용단과 함께 미주(美洲)공연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60년 국악진흥회로부터 국악공로상을 받고, 62년 정부로부터 문화포상을 받았으며 한때 국립국악원의 국악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그의 산조는 주법(奏法)이 까다롭고 연주 때마다 새로운 가락이 첨입(添入)되는 등의 이유로 거의 전승자가 없는 실정이나, 일제 때 취입한 다수의 음반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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